제주 한라산 겨울산행을 다녀와서... (6회)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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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08-10-15 18:27 조회2,575회 댓글0건본문
2007년 2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 3일로 예정된 송육회 산악대장 장위식 동창이 모집하는 회원에 첫 번째로 신청을 했다.
2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크루즈선 '오하마니호'에 승객 약 900여명을 태우고 밤하늘과 망망대해만 펼쳐진 해로를 오하마니호만 덩그라니 제주로 향했다.
'한라'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참고로 한라산은 1950m로 남한의 최고봉이라 한다. (1은 한 번, 9는 구경, 50은 오십시오라는 식으로 외우면 '한 번 구경오십시오' 라는 말로 한라산 1950m를 간단하게 외울 수 있게 된답니다.)
높은 산에의 기대, 설렘, 두려움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벅찬 가슴으로 한라산 여행길에 올랐다.
2일 밤 첫째 날 오하마니호 선상에서 이벤트 행사가 열렸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캔맥주에 오징어로 뒤풀이를 하려고 했는데, 3층에 오르니 Live쇼가 펼쳐져 손뼉치고, 노래하고, 게임을 하는데 함께 흥얼대고 노래 따라 부르다가, 밤 열시 이후에는 선상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밤하늘의 환상의 불꽃놀이 하며, 모두 함께 소리치고, 환호성 속에 차디찬 바닷바람은 전혀 무시한 채 디스코축제에 푹 빠져들었다.
2월 3일 둘째 날 드디어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행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설원이 펼쳐진 가운데에서의 산행, 하지만 전말까지만 해도 뉴스에서는 통제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포근한 날씨였다. 일행 900명 중에 우리 일행 5명이 합세를 하여 500명 정돈 일렬로 줄을 서 거의 출입제한구역까지 통과를 했으나, 400명 정도는 도로 하산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우리 동창들은 힘든 산행이었지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향해서 흰눈을 밟으며 행군 도중, 1800m 고지쯤에서 간단히 점심으로 요기를 한 다음 재차 산행을 하려는데, 영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 때문에 다른 동창들까지 정상에의 정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애가 탔다. 산악대장이 되돌아 내려와 하산을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 초콜릿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만 동창의 도움을 받고 계속 산행을 하라고 한다. 이 자리를 빌려 기만동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일은 지금은 그래도 웃으며 쓸 수 있지만, 무적동창이 다리에 쥐가 나서 도저히 정상에 못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부인도 정상정복을 하지 못하고 나머지 셋만 정상정복을 한 셈이다.
정상 한라산 백록담 1950m의 부근의 바람에는 사람도 알아간다고 한다. 그런 눈보라의 거센 바람을 헤치고 정상에 도착을 하여 안착을 하여 먼저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한라산 백록담은 내 것이다.'라고 외치기는 했으나 정상의 차가운 바람과 추위, 두려움으로 인하여 정상 정복의 감격에 겨워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산... 하산길은 더욱 미끄럽고 위험하니 조심을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엄청 다지면 내려왔다. 하산은 성공이었다.
무적부부는 먼저 하산하는 바람에 다리도 좀 나았고,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일 밤엔 우리 일행끼리 배에서 정상정복 '축하파티'. 회에다가 맥주로 그야말로 기분은 짱! 너무 업되어 있었다. 배에서 자리 땅따먹기 등 즐긴 것도 많지만, 그날 린다는 나이롱 뻥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2월 4일 마지막 날,
인천항에 도착, 아침식사를 하고 서울로...
너무 즐거웠던 삼일 간의 한라산 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아는 동창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객지에서 그것도 바다건너 머언 제주도에서 모르는 사람들에 끼어 우리 동창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였는지를 가슴절절히 느낀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장 동창을 비롯하여 한라산산행에 함께 하신 동창들께 고맙고 격려해준 동창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월 2일 금요일 오후 7시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크루즈선 '오하마니호'에 승객 약 900여명을 태우고 밤하늘과 망망대해만 펼쳐진 해로를 오하마니호만 덩그라니 제주로 향했다.
'한라'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참고로 한라산은 1950m로 남한의 최고봉이라 한다. (1은 한 번, 9는 구경, 50은 오십시오라는 식으로 외우면 '한 번 구경오십시오' 라는 말로 한라산 1950m를 간단하게 외울 수 있게 된답니다.)
높은 산에의 기대, 설렘, 두려움 등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벅찬 가슴으로 한라산 여행길에 올랐다.
2일 밤 첫째 날 오하마니호 선상에서 이벤트 행사가 열렸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캔맥주에 오징어로 뒤풀이를 하려고 했는데, 3층에 오르니 Live쇼가 펼쳐져 손뼉치고, 노래하고, 게임을 하는데 함께 흥얼대고 노래 따라 부르다가, 밤 열시 이후에는 선상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밤하늘의 환상의 불꽃놀이 하며, 모두 함께 소리치고, 환호성 속에 차디찬 바닷바람은 전혀 무시한 채 디스코축제에 푹 빠져들었다.
2월 3일 둘째 날 드디어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행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설원이 펼쳐진 가운데에서의 산행, 하지만 전말까지만 해도 뉴스에서는 통제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포근한 날씨였다. 일행 900명 중에 우리 일행 5명이 합세를 하여 500명 정돈 일렬로 줄을 서 거의 출입제한구역까지 통과를 했으나, 400명 정도는 도로 하산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우리 동창들은 힘든 산행이었지만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향해서 흰눈을 밟으며 행군 도중, 1800m 고지쯤에서 간단히 점심으로 요기를 한 다음 재차 산행을 하려는데, 영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 때문에 다른 동창들까지 정상에의 정복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애가 탔다. 산악대장이 되돌아 내려와 하산을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 초콜릿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만 동창의 도움을 받고 계속 산행을 하라고 한다. 이 자리를 빌려 기만동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일은 지금은 그래도 웃으며 쓸 수 있지만, 무적동창이 다리에 쥐가 나서 도저히 정상에 못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부인도 정상정복을 하지 못하고 나머지 셋만 정상정복을 한 셈이다.
정상 한라산 백록담 1950m의 부근의 바람에는 사람도 알아간다고 한다. 그런 눈보라의 거센 바람을 헤치고 정상에 도착을 하여 안착을 하여 먼저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한라산 백록담은 내 것이다.'라고 외치기는 했으나 정상의 차가운 바람과 추위, 두려움으로 인하여 정상 정복의 감격에 겨워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산... 하산길은 더욱 미끄럽고 위험하니 조심을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엄청 다지면 내려왔다. 하산은 성공이었다.
무적부부는 먼저 하산하는 바람에 다리도 좀 나았고,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일 밤엔 우리 일행끼리 배에서 정상정복 '축하파티'. 회에다가 맥주로 그야말로 기분은 짱! 너무 업되어 있었다. 배에서 자리 땅따먹기 등 즐긴 것도 많지만, 그날 린다는 나이롱 뻥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배웠다.
2월 4일 마지막 날,
인천항에 도착, 아침식사를 하고 서울로...
너무 즐거웠던 삼일 간의 한라산 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아는 동창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객지에서 그것도 바다건너 머언 제주도에서 모르는 사람들에 끼어 우리 동창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였는지를 가슴절절히 느낀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장 동창을 비롯하여 한라산산행에 함께 하신 동창들께 고맙고 격려해준 동창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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