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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 한신의 과하지욕(跨下之辱) -조임연(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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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10-02-01 12:18 조회4,3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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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은 원래 한(漢)나라의 왕족출신으로 기원전 3세기말 진(秦)나라의 시황제 때 회음지방에서 태어났지만 멸망한 조국 한나라의 광복을 꿈꾸며 신분을 숨긴 채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왕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고 귀족을 상징하는 장검을 차고 다녔지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성장기를 보냈다.
하루는 길가에서 가축을 잡는 도살꾼과 그 무리들을 만났는데 그 중 하나가 한신에게 "네놈이 덩치가 크고 늘 장검을 차고 다니는데 속은 아주 비겁한 마음으로 가득 찬 겁쟁이일 것이다. "도살꾼이 이렇게 모욕을 주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한신을 욕보이기 시작하였다.
"한신아! 그걸로 나를 찔러 보아라. 그럴 용기가 없다면 내 바지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거라. "한신은 상대방을 한참 응시하더니 주저 없이 머리를 숙이고 바지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
저잣거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한신을 비겁한 겁쟁이라고 너나 할 것 없이 비웃었으며 이러한 수모를 겪은 날부터 사람들에게 냉대를 당하고 춥고 배고픈 일이 많아졌으니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이라는 뜻을 가진 과하지욕(跨下之辱)이란 고사가 이렇게 생기게 되었다.
한신은 먹을 것이 없어 굶거나 혼자 다니며 성 밑을 배회하고 노는 날이 많아졌는데 이러한 한신의 불쌍한 모습을 눈여겨보던 빨래하는 노파가 한동안 한신에게 찬밥이나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한신은 노파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 훗날 반드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노파는 퉁명스럽게 화를 내면서 "내가 식은 밥이나
제공한 것은 사람이 인정으로 한 것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고 하였겠소?"
이처럼 젊은 시절 빨래하는 노파에게 밥이나 구걸하는 인물이라는 표모반신(漂母飯信)이라는 세간의 그릇된 평가와 함께 살았다.
BC.210년 진나라의 시황제가 불로장생의 영원한 꿈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죽자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는데 한신은 이때 초나라의 항량의 군대에 들어가 봉기에 앞장섰으나 항량이 진나라의 장함과의 싸움에서 지리적 위치 등을 들어 충언했지만 채택되지 않고 항량이 전사하자 항우 밑에서 전차와 말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다.
항우에게도 여러 가지 계책을 진언하였으나 한 번도 그의 계책은 채택되지 않고 일개 낭중(郎中)이라는 미관말직에 있었으니 이렇듯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없었던 것은 분신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남의 사타구니 아래나 기어 다니고 빨래하는 노파에게 밥이나 구걸하는 인물" 이라는 세간의 그릇된 꼬리표가 따라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항우 밑에서 인정받지 못한 한신은 다시 자신의 뜻을 펼칠 유방에게 귀순하였지만, 진(秦)나라 타도를 외치는 각지의 세력들 중에서 항우의 세력이 가장 막강하였고 유방은 그저 보잘 것 없는 농민군에 지나지 않았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면에서 항우와 대적할만한 세력이 전혀 못되었으니 이 때문에 유방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성을 공격하여 입성하여 놓고도 성을 지키지 못하고 포기 할 수밖에 없었으며 항우의 명령에 따라 한중이라는 외진 곳을 봉지로 받았다.
유방보다 늦게 함양성에 입성한 항우가 함양궁을 불태우고 3세 황제 자영을 처형한 후 온갖 살육과 만행을 저지른 뒤 천하의 형세를 읽지 못하고 고향 팽성으로 돌아가려 하자 한신은 항우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유방이 한중으로 향할 때 그를 따라 한중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신은 유방의 부하였던 하후영과의 친교를 맺고 승상인 소하와도 가까워 그들의 추천을 받아 유방휘하의 장군이 되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절치부심, 유방의 신임은 갈수록 깊어지고 한신의 지원에 힘입어 유방은 마침내 항우와 목숨 건 전쟁이 4년 동안이나 시작되었다.
타고난 재능과 지략을 한껏 발휘하여 사사건건 항우의 의도를 파악하고 좌절을 시켰으니, 이제 책사 괴통의 말대로 "두 군주 항우와 유방의 운명이 당신께 달렸으니 한(漢)의 편을 들면 한이 이기고 초(楚)의 편을 들면 초가 이긴다." 는 말처럼 되었다.

마침내 한신은 해하(亥河)의 전투에서 30만 대군을 투입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오강(烏江)까지 도망하는 항우를 추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으며, 항우곁에는 절세의 미인 애첩 우희가 있었으니 오늘날 중국의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는 항우와 우희의 사별을 뜻하는 고사(故事)가 되었다.

끝으로 항우나 유방에게 맞설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한신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쳐서 제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최음후열전을 보면 인내의 미덕을 강조하기보다는 그의 불굴의 정신과 의지, 세상을 비웃는 오만한 기개까지 갖춘 장부의 열전을 기록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된 기회주의와 물질적 권위주위의 팽배에서 벗어나 올곧은 자신만의 쓰임을 읽었던옛 위인들의 기상을 고전에서 잠시 재미로 엿볼 수 있음이다.

*** 현: 5회 송곡 골프회 회장 /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사법행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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