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육회여 영원하라! -박준호(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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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10-02-01 12:27 조회2,961회 댓글0건본문
송육회는 1974년 졸업 이후 결성된 동창회로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나오고 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어가기 위해 송육회에서는 매년 오월이면 야유회를 하면서 지난 세월의 즐거움을 반추하곤 한다.
올해도 과천 관문공원에서 어김없이 오월오일 개최가 되었는데 작년과는 달리 이부동창들만의 모임으로 하여 약간은 서운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1부와 2부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서먹함을 갖고 있는 일부 동창들의 의견을 들어준 결과였다.
동문회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이기춘 편집위원장님의 야유회관계 내용을 글로 써달라는 독려에 금년야유회는1부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재미있고 유익했다는 내용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이 기회에 느낌을 얘기한다면, 불혹을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목전에 둔 마당에 1부와 2부를 가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추억이 서린 홍익동 모교를 졸업 한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교를 자신 있게 이야기 못하고 지내온 세월들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 되었다.
수많은 동창친구들이 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 학교에 다니면서 반장. 총무부장 등을 지내며 학생회활동을 하면서 단 한번도 자부심을 잃어 본적이 없었지만 사회에 나오면서 뼈저린 아픔을 몸으로 많이 겪으면서 상처도 많이 받곤 했다. 국제그룹에 들어가 근무 할 때 동아리에 동창이 없어 외톨이가 되면서 직장생활을 했던 기억과 학벌사회에서의 냉혹함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만학한 것이 이제는 대학원까지 졸업 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고등학교 동창이 아니더라도 많은 동창들이 생겨나 자신은 덜 외롭다.
하지만 많은 인원의 동창들이 고등학교동창회로 멈춰있는 동창들이 많이 있음을 볼 때,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하며 호연지기를 닦았던 고등학교의 동창회가 무엇보다 중요시 될 수 밖에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우리들 중에 이제는 이상봉과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도 배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총동문회가 잘 결성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뒤늦은 자부심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가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듯이 죽을 때까지 송곡인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볼 때, 극히 일부의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1, 2부가 합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합쳐질 수 있다고 본다. 양식 있는 동창들이 더 많이 나타나 꼭 합쳐져서 명실상부 송육회의 거듭남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 2부의 집행부가 자주 만나서 못 합칠 이유가 없음을 진지하게 논의한다면, 그래서 통합이 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총동문회에서도 송육회로서 이름을 드높일 것이다.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양식 있는 동창들이 뒷전에 앉아서 관망만 하고 있었기에 해결을 못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처럼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라고 자기의 역할에 충실 한다면, 또한 3%의 소금이 있기에 바닷물이 썩지 않듯이 송육회가 3%의 소금 역할을 한다면 1, 2부의 통합과 함께 총동문회의 발전은 크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현재 : 안양문화원 사무국장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어가기 위해 송육회에서는 매년 오월이면 야유회를 하면서 지난 세월의 즐거움을 반추하곤 한다.
올해도 과천 관문공원에서 어김없이 오월오일 개최가 되었는데 작년과는 달리 이부동창들만의 모임으로 하여 약간은 서운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1부와 2부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서먹함을 갖고 있는 일부 동창들의 의견을 들어준 결과였다.
동문회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이기춘 편집위원장님의 야유회관계 내용을 글로 써달라는 독려에 금년야유회는1부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재미있고 유익했다는 내용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이 기회에 느낌을 얘기한다면, 불혹을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목전에 둔 마당에 1부와 2부를 가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추억이 서린 홍익동 모교를 졸업 한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교를 자신 있게 이야기 못하고 지내온 세월들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지나간 일들이 되었다.
수많은 동창친구들이 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 자신 학교에 다니면서 반장. 총무부장 등을 지내며 학생회활동을 하면서 단 한번도 자부심을 잃어 본적이 없었지만 사회에 나오면서 뼈저린 아픔을 몸으로 많이 겪으면서 상처도 많이 받곤 했다. 국제그룹에 들어가 근무 할 때 동아리에 동창이 없어 외톨이가 되면서 직장생활을 했던 기억과 학벌사회에서의 냉혹함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만학한 것이 이제는 대학원까지 졸업 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고등학교 동창이 아니더라도 많은 동창들이 생겨나 자신은 덜 외롭다.
하지만 많은 인원의 동창들이 고등학교동창회로 멈춰있는 동창들이 많이 있음을 볼 때,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하며 호연지기를 닦았던 고등학교의 동창회가 무엇보다 중요시 될 수 밖에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우리들 중에 이제는 이상봉과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도 배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총동문회가 잘 결성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뒤늦은 자부심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가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듯이 죽을 때까지 송곡인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볼 때, 극히 일부의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1, 2부가 합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합쳐질 수 있다고 본다. 양식 있는 동창들이 더 많이 나타나 꼭 합쳐져서 명실상부 송육회의 거듭남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 2부의 집행부가 자주 만나서 못 합칠 이유가 없음을 진지하게 논의한다면, 그래서 통합이 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총동문회에서도 송육회로서 이름을 드높일 것이다.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양식 있는 동창들이 뒷전에 앉아서 관망만 하고 있었기에 해결을 못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처럼 군군 신신 부부 자자 라고 자기의 역할에 충실 한다면, 또한 3%의 소금이 있기에 바닷물이 썩지 않듯이 송육회가 3%의 소금 역할을 한다면 1, 2부의 통합과 함께 총동문회의 발전은 크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현재 : 안양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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